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라예보 사건 (문단 편집) === 3차 암살 시도의 성공 ===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Postcard_for_the_assassination_of_Archduke_Franz_Ferdinand_in_Sarajevo.jpg|width=100%]] || || 사라예보 시청에서, 황태자 부부가 암살 몇 분 전에 찍은 마지막 사진 || 결국 [[오스카르 포티오레크|포티오레크]] 장군은 암살을 피하기 위해 지름길로 가기로 했지만 '''정작 운전기사에게는 지름길로 가야 한다는 말을 알리지 않았다.''' 운전기사는 예정된 길로 갔고 포티오레크 장군은 길을 잘못 들었다고 운전기사에게 소리쳤다. 그러나 길이 V자 모양으로 되어 있는 밀랴츠카(Miljacka) 강의 라틴 다리에서는 반드시 서행을 해야 했고 후진을 하던 차에 멈추게 되었다. 그런데 그 때까지 작전에 아무런 참여도 하지 못하고 있던 프린치프가 '''하필''' 자기가 자주 가던 모리츠 실러(Moritz Schiller) 카페 주변을 서성거렸는데 갑자기 눈앞에서 황태자 부부가 탄 자동차가 나타난 것이다. '''결국 이 기회를 노려서 가브릴로 프린치프는 준비해 둔 [[FN M1910]] 자동권총을 꺼내서 자동차 앞에 뛰어들며 황태자 부부를 향하여 방아쇠를 당겼다.''' || [[파일:external/pbs.twimg.com/Bok4R2oIUAAoIDL.jpg|width=100%]] || || 암살당시 사용된 FN M1910. 현재 오스트리아 빈의 군사(軍史) 박물관(Heeresgeschichtliche)에 있다. || 사실 당시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380ACP를 막을 수 있는 실크 방탄조끼를 입고 있었으며 이 방탄조끼는 1901년에 이미 [[알폰소 13세]]의 목숨을 살리면서 효용성을 입증한 바 있었다. 하지만 프린치프의 총탄은 방탄조끼가 아니라 프란츠 페르디난트의 목에 명중해 경동맥을 끊어 버렸기 때문에 이 방탄조끼는 아무 의미가 없어졌다. 프린치프의 첫 발은 황태자를, 두 번째 발은 조피를 맞췄으며 피격 직후 황태자 부부는 시청으로 옮겨졌다. 당시 운전기사 로이카의 증언에 따르면 프란츠는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조페를[* 조피의 애칭]! 조페를! 죽으면 안 되오! 아이들을 위해 꼭 살아주시오!"[*원문 "Sopherl! Sopherl! Stirb nicht! Bleib' am Leben für unsere Kinder!"]라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조피는 시청에서 숨을 거두었고 프란츠 황태자도 몇 분 뒤에 숨을 거두었다. 사실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두 번째로 노린 사람은 황태자비가 아니라 같은 차에 동승했던 [[오스카르 포티오레크]] 보스니아 [[총독]]이었고 프린치프는 조피가 죽었다는 말에는 유감을 표명했다. 포티오레크 총독은 발칸 전쟁 이래 오스트리아에서 세르비아에 대한 위기감이 증가하자 이에 호응하여 보스니아의 세르비아인 공동체 여럿을 탄압했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